조선시대의 내시들도 성관계를 했다.

우리는 흔히 사극에 등장하는 '내시'들을 거세되어 남성성을 잃어버린 존재로 생각한다. 실제 사극 속 내시는 수염도 나지 않고 목소리도 가늘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현대인들은 그런 미디어 속 내시의 모습을 보며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내시를 불쌍히 여기곤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 내시의 삶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르다. 

내시는 평생 왕을 보좌하며 살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내시들도 아내와 자녀를 두고 결혼생활을 했다. 자신의 아이를 가질 순 없었지만 아내를 맞고 양자를 들여 대를 이었다. 

성생활도 했다. 음경과 고환을 모두 잘라내는 중국의 환관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내시들은 음경을 남겨둔채 고환만 제거했기 때문에 성관계가 가능했다. 다만 남성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발기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힘들었고, 사정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내시는 사정을 못하는 괴로움 때문에 아내의 목덜미와 어깨를 깨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또한 도구를 이용하기도 했다. 발기되지 않는 자신의 성기 대신 도구를 이용해 성관계를 하며 성욕을 해소하곤 했다. 

한편 내시들은 '양물 단지'라는 단지를 자기 목숨만큼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양물 단지는 저세된 자신의 고환을 담아 놓은 것으로 당시 내시들은 자신이 죽은 후 양물 단지 속 고환을 다시 접합시켜 관에 넣어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